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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said/ She said 저널리즘’ 시대의 종말


기자는 늘 취재 대상과 객관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배웠다. 객관보도. 20세기 세계 언론이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떠받드는 가치다.

당연히 객관보도에선 기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는 일은 드물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거의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취재원의 입을 빌어서 전달한다. 비판하고 싶을 경우에도 생각이 비슷한 취재원의 멘트를 활용한다. 그래도 더 비판하고 싶을 경우엔 (흔히들 기자수첩이라 불리는) 칼럼을 쓴다.

물론 최근 들어 이런 보도 관행에 대한 비판이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이 사람, 저 사람 말을 수평인용한 뒤 결론도 없이 도망가버리는 건 무책임한 처사라는 비판도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시민 저널리즘 이론가인 제이 로젠은 이런 보도 관행을 ‘He said/ She said Journalism’이라고 비판한다. 아, 그 뒷 부분에 한 마디 더 붙는다. “We have no idea.”

최근 한국에서도 이런 보도 관행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기자가 판단을 하지 않고 정치인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주는 보도 관행이 결국은 ‘언론 플레이’ 도구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뻔히 상대방을 폄훼하기 위한 발언이란 걸 알면서도 특정 정치인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해서 기사로 만들어주는 보도 행태. 내 기억으론 노무현 정권 때 야당이 이런 식의 언론 플레이로 루머를 유포시킨 사례가 꽤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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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로젠이 최근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을 비판한 글을 또 올렸다. 비판 대상은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기사. 론 폴 공화당 상원의원이 투표 등록 제도를 지지하는 당의 방침을 비판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그런데 정작 기사를 쓴 뉴욕타임스 기자는 론 폴 의원이 주장하는 게 사실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제이 로젠은 좀 더 적나라한 비판도 하고 있다.

Look, we have no idea who’s right. How would we? Figure it out for yourselves! Don’t be asking us to sort out what’s real from what’s fiction. We’re just New York Times journalists. We don’t do “there’s no basis for that.” We do “Republicans contend…”

기가옴의 매튜 잉그램 기자는 제이 로젠의 주장을 전해주면서 한 발 더 나갔다. ‘He said/ She said’ 식 보도를 일삼는 건 단순히 저널리즘의 실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란 것. 한 발 더 나가 미디어 시장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고 꼬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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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얘기일까? 신문이 유일한 정보 습득 수단일 때까지만 해도 ‘He said/ She said’ 보도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신문이 정보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도 직접 경쟁 대상이다. 게다가 미국만 해도 복스, 파이서티에잇, 퍼스트룩 미디어 같은 색깔 뚜렷한 매체들이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들은 중립적인 관점에서 양쪽 주장을 두루뭉수리하게 전달하기 보다는 핵심을 찌르는 보도를 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상황에서 뉴욕타임스 같은 신문이 ‘He said/ She said’ 식 보도를 고수하는 건,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처사란 것이다.

스크린샷 2014-05-14 오후 2.47.57요즘 읽고 있는 ‘비욘드 뉴스(Beyond News)’ 저자인 미셸 스티븐스도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아에 ‘Wisdom Journalism’이란 새로운 용어까지 들이대면서 ‘기계적 객관보도’ 관행을 더 이상 계속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기자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사실 수집(collecting facts)’이 아니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분석과 해석’이란 게 스티븐스의 주장이다.

그는 ‘Wisdom Journalism’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기자 채용 및 교육 과정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 멘트를 얻으려 쫓아다닐 거면 아예 특정 분야 전문 식견을 갖춘 인력들을 직접 채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만 주장하면 예전에 국내 몇몇 언론사에서 도입했다가 실패한 전문기자제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스티븐스 주장은 책 전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괜히 짧은 내 인용만 보도 오해하진 말길 바란다.)

그 부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Instead of fact-oriented generalists who are dependent upon expert sources, the idea would be to hire idea-oriented specialists who know as much as the expert sources.

마지막으로 내 얘기를 하고 글을 맺자. 지난 2년 여 동안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을 나름대로 열심히 팔로업했다. 그런데 난 그 기사를 쓰면서 관련 전문가 멘트를 넣은 적이 없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게으른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난 내 나름대로 그 사건을 해석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건이 허락하는 한 관련 자료도 열심히 보고, 나름대로 고민도 많이 했다.

내가 쓴 기사 중 가장 반향이 컸던 건 특허 근본 건드린 삼성-애플 특허 2차 소송이란 글이었다. 지금은 칼럼으로 분류돼 있지만 사실 그 글은 원래 종합 분석 기사로 썼던 거였다. 기사 읽어보면 알겠지만 전문가 멘트 전혀 없다. 그냥 내가 이해한대로, 내 관점에 따라 썼다. 그런데 그 글에 대해 변호사나 변리사 같은 전문가들이 꽤 많은 칭찬을 해 왔다. 핵심을 잘 찔렀단 게 그 이유였다.

내 얘기로 끝을 맺어서 좀 어색하긴 하지만, 이제 기자들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하는’ 제너럴리스트에 머물러선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젠 기자 스스로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시장이 그걸 요구하기 때문이다. 언론사에 몸 담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선명한 주장을 할 때, 기자들은 기계적 객관주의에 매몰돼 흐리멍텅한 글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그런 글에 반응을 보이겠는가? 기사는 그 시대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 글쓰기다. 그러니 이제 21세기 시대 정신이 요구하는 걸 반영하려고 노력해야 할 때가 됐다. (혹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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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said/ She said 저널리즘’ 시대의 종말”에 대한 1개의 댓글

  1. 핑백: 비욘드 뉴스, 혹은 지혜의 저널리즘을 위하여 | Hyper/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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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트리는 이(가) Media에 5월 14, 2014에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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