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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특종이 아니라 맥락이야”


이사할 때마다 늘 버리는 연습을 합니다. 쌓여 있는 물건들 중 대부분은 별 쓸모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글도 마찬가지일겁니다. 그래서 전 블로그 같은 것 옮길 때 예전 글은 대부분 그냥 버립니다. 모든 글은 텍스트가 아니라 컨텍스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무슨 말이냐구요? 모든 글은 그 글을 쓸 때 맥락 때문에 읽을 가치가 있다는 게 제 알량한 신념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적어도 글을 쓴 저한텐) 그런 맥락을 뛰어넘는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글들이 있습니다. 그런 글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이 곳으로 옮겨 왔습니다. 읽은 여러분들에겐 어떨 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최근 제 고민을 잘 담고 있는 글인 건 분명합니다.

뉴스는 수명이 얼마나 될까? 하루? 한나절? 글쎄. 과학적으로 조사를 해 본 적은 없지만, 그렇고 그런 뉴스는 기껏해야 한 두 시간 정도면 관심권에서 멀어져버리는 것 같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 버린다.

기자들의 일상을 한번 생각해보자. 하루 종일 엄청나게 많은 행사 쫓아다닌다. 제대로 뛰어다니는 기자들은, 정말 죽을 고생한다.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닌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열심히 써낸 기사들은, 비슷 비슷한 다른 기사들과 함께 묻혀버린다. ‘찬란한 유산’처럼. ^^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페이스북, 트위터를 비롯한 SNS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물론 SNS 무시하면 안 된다. 그런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나 역시 (남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소셜 미디어에 대해 조금 안다고 자부하고 있고, 나름 애정도 많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당장 뭘 얻을 수 있을 지 잘 보이질 않는다. 소셜 미디어는, 말 그대로 유통 채널의 하나일 뿐이다.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데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눈에 띄었다. ‘특종과 객관보도의 중요성이 갈수록 줄어드는 이유는? 맥락이 모든 것이기 때문(Why scoops and objectivity matter less and less~~)’이란 긴 기사다. 내가 무척 신뢰하는 기가옴의 매튜 잉그램 기자가 필자다.

스크린샷 2014-05-19 오전 9.08.34

맥락적 저널리즘의 도래?

이 기사에서 소개하는 논문이 더 흥미롭다. 맥락적 저널리즘의 도래(The Rise of Contextual Journalism)란 보고서다.

맥락적 저널리즘이 다소 생소한 용어라고? 미안하지만 이 말. 전혀 생소한 용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저널리즘이 막 관심을 끌 때 미국 학자들이 엄청 많이 주장했던 용어다. 내 첫 저술인 ‘인터넷신문과 온라인 스토리텔링’에도 “인터넷 저널리즘의 경쟁 포인트는 맥락적 저널리즘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솔직하게 털어놓자. 저건 내 얘기가 아니라, J. Pavlik이란 학자의 주장을 요약 소개한 것이다. 물론, 절대 무단 인용하지 않았다. 파블릭이란 학자는 저렇게 주장했다, 고 친절하게 각주 달아줬다.)

콜롬비아대학 교수 두 명이 공동 집필한 이 논문은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미국 저널리즘의 추세를 연구한 논문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단순 사실 보도(fact-finding reporting)는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맥락적인 보도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이 이들의 주장을 잘 포괄해준다.

흔히 이런 변화를 블로그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최근 페북, 트위터 등을 통해 실시간 보도가 확대되면서 기자들의 사실 보도가 갖는 매력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논문 저자들은 “1950년대 이래 꾸준이 이어져 온 변화”라고 주장한다. 사실 보도 자체는 이제 ‘오픈소스화’ 되고 있기 때문에, 맥락을 짚어주고 전해주는 뉴스로 승부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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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맥락적 저널리즘이 통일된 용어는 아니다. 연구자에 따라서 심층보도(In-depth reporting), 장문 보도(Long-form journalism) 같은 말을 쓰기도 한다. 요즘 부쩍 관심이 증가한 데이터 저널리즘 역시 일종의 맥락적 저널리즘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맥락적 저널리즘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왜 기자들은 바뀌지 않는 걸까? ‘맥락적 저널리즘의 도래’ 논문 필자 주장에 따르면, 그리고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지도 비슷한데, 기자들은 수 십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사실 보도 최우선 주의’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형식적인) 객관보도 형태에 대한 믿음도 절대 흔들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사족으로 붙인 내 의견

우리 시대의 뛰어난 소설가이자 문장가인 김훈이 기자 시절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런 말이었다.

“정확한 팩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6하원칙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팩트 뒤에 숨겨진 인간의 진실까지 6하 원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석사 논문 제목은 ‘인터넷의 매체 특성이 인터넷신문 기사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당시 문제 의식은 제법 거창했다. 인터넷이란 매체에 글을 쓰게 되면 스토리텔링 방식이 달라질 것이란 게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 난 문제의식은 거창한 데, 그걸 학문적으로 증명해 낼 능력이 없었다. 하다 못해 기본 통계 기법에 대한 지식도 없었으니. (ㅋㅋㅋ. 이런 학생 지도하느라 고생하신 지도교수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

그런데, 그 때 원대했던 내 문제의식을 촉발시켰던 게 바로 김훈 기자의 저 말이었다. 아까운 저 말을 꼭 써 먹고 싶었던 난, 비교적 눈에 잘 띄지 않는 각주에 저 말을 집어넣었다. 그런 식으로라도 내게 문제의식을 안겨준 김훈 기자에게 감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 옆으로 좀 많이 샜다. 어쨌든, 난 김훈의 저 말을 “기사도 스토리텔링이다”는 식으로 이해했다. J. Pavlik의 책에서 접했던 ‘맥락적 저널리즘’ 역시 ‘제대로 된 스토리텔링’이란 관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갈수록 팩트보다는 맥락이 중요해진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그러니 기자들도 저런 변화에 조금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야만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초특급 유통망이 힘을 발휘하지. 그렇지 않고, 그렇게 그런 기사 백날 트위터나 페북으로 쏴 봐야, 친구들한테 ‘소음’만 안겨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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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트리는 이(가) Media에 5월 19, 2014에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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