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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잔칫상, 차범근, 그리고 NYT 혁신 보고서


[풍경1- 아내의 잔칫상]

내 아내는 손님 치르는 데 두려움이 없는 편이다. 웬만한 손님맞이는 큰 고민 없이 해낸다. 왔다 간 손님들의 만족도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좋겠다. 저런 음식 먹고 살아서”란 칭찬도 곧잘 듣는다. 내 아내는 요리를 잘하는 걸까? 혹은 좋아하는 걸까? 천만에. 할 줄 아는 것 10개 정도를 뽑아서 순위를 매기면 요리는 맨뒤로 밀린다. 평상시 요리보다는 일회성 이벤트에 강하다. 그러다 보니 요리 잘한다는, 엉뚱한 칭찬도 듣고 산다. 참고로 우리 집 평소 식단은 평균 이하다. ^^(마눌. 미안혀요.)

[풍경2- 갈색 폭격기 차범근]

1970년대 차범근 선수를 한번 떠올려보자. 당시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 특급 골잡이였다. 요즘이야 잉글랜드나 스페인 리그가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그 당시엔 독일 분데스리가가 세계를 주름잡던 시절. 그런데 차범근이 한국 축구의 저변을 대표하는 선수일까? 천만에. 차범근 선수는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예외적인 존재였다. 당시 한국 축구는 여전히 ‘뻥 축구’가 대세였다. 전략, 전술보다는 투지로 승부하는, 세련된 축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NYT ‘스노폴’은 국내 온라인 저널리즘 혁신의 적

아내 얘기와 차범근 선수 얘기로 시작해서 깜짝 놀랐는가? 사실 나도 놀랐다. (특히 아내 발언. 이렇게 위험한 발언을 하다니.) 두 사례는 최근 공개된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 얘기를 하기 위한 양념이다.

그 얘기 하기 전에 먼저 ‘스노우폴 프로젝트’ 얘기부터 좀 해보자. ‘스노우폴’은 지난 해 4월 퓰리처상 기획보도부문 상을 받은 작품이다. 일단 이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한번 살펴보자. 에이케이스 블로그에 실린 글에서 그대로 인용했다.

‘스노우폴’은 획기적인 인터랙티브 저널리즘을 보여주며 디지털스토리텔링의 정점을 찍었다. 1만 7천자의 긴 스토리를 멀티미디어 비디오와 모션그래픽 66개를 배치해 워싱턴주 캐스케이드 산맥을 덮친 눈사태에 대한 내용을 독자가 생생하게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사진, 지도, 3D 그래픽, 비디오 등 동원가능한 모든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기사를 입체적으로 만들었고, 인터랙티브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깔끔한 레이아웃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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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스노우폴은 화려하다. 언뜻 보기에도 한 편의 멋진 작품을 감상하는 듯하다. 가히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완성판이라고 할만한 작품이다.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혁신 아이콘’처럼 떠받들여지는 덴 이런 프로젝트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난 왜 “스노우폴이 국내 온라인 저널리즘 혁신의 적”이라고 선언하는 걸까? 그것도 아내까지 들먹여가면서. 그건 ‘스노우폴’은 굳이 비유하자면, 잔치 음식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단한 작품이긴 하지만, 저걸로 혁신의 척도로 삼을 경우엔 심각한 착시 현상에 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스노우 폴’은 많은 국내 온라인 저널리즘 전문가들이 “콘텐츠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다. 문제는 혁신을 강조하기 위한 사례가 도리어 혁신의 방해물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노우폴은 “역시 혁신은 어려운거야. 뉴욕타임스나 되니까 저런게 가능하지.”란 안도감을 심어주기 딱 좋은 작품이다.

한국 언론은 왜 스노우폴을 만들어낼 수 없을까

이제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한국 언론은 왜 스노우폴을 만들어낼 수 없는 걸까? 당연한 얘기지만, 물적 토대가 너무나 취약하다. 영상이나 멀티미디어 자료도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저런 것 하나 만들기 위해 수 개월 동안 고급 인력을 잡아놓을 여유가 없다. 매일 매일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게 문제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질문을 한번 바꿔보자. 한국 언론은 스노우폴을 만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까? 난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심하게 얘기하자. 척박한 한국 온라인 저널리즘이 혁신을 하려면 ‘스노우 폴’에 대한 환상부터 지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가정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선 일회성 잔치 음식 만드는 역량을 키워선 안 된다. 그건 후순위다. 더 시급한 건 일상적으로 먹을 식단을 어떻게 잘 차릴 것인가부터 출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 축구나 야구 혁신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뭘까? 제2, 제3의 차범근, 박지성을 만드는 것? 제2, 제3의 박찬호, 추신수를 만드는 것? 그것 신경쓰다간 한국 축구나 야구 기본 인프라 다 망친다. 그들은 정말 예외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분명 자랑스러운 선수들이지만, 그런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탄생할 수 있는 토대부터 먼저 만들어나가야 한다. 월드컵 4강이나 WBC 준우승이 일회성 실적으로 끝나지 않도록 밑바닥부터 다져야 한다는 얘기다.

자, 그럼 한국 저널리즘의 가장 큰 문제, 아니 범위를 좁혀서, 한국 온라인 저널리즘의 가장 큰 문제는 뭘까? ‘스노우 폴’ 같은 멋진 기획 기사가 없는 것? 그것 없어도 아무런 문제 없다. 밥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 없다. 더 시급한 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성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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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한국 인터넷신문들은 콘텐츠 전략이란 게 없다. 누가 경쟁자인지 제대로 고민하고 있는 곳도 많지 않다. 외신 기사 쓸 땐 외국 신문의 도표를 영어 그대로 갖다 붙이는 건 예사로 하고 있다. 간단한 인포그래픽이나 관련 자료를 덧붙일 엄두도 내지 않는다.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같은 기본적인 툴만 쓸 줄 알아도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데.

원본 자료 링크? 아예 관심도 없다. 자기 기사 링크는 열심히 하지만, 관련 보고서나 자료를 그대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상호 인용 같은 건 엄두도 못낸다.

무슨 애기냐고? ‘스노우폴’ 만들 시간 있으면 이런 기본적인 것부터 개혁해나가야 할 때란 얘기다. 지금 우리 언론이 처한 상황은. 4년에 한번 활동하는 월드컵 대표팀에 수 억 쏟아부을게 아니라 우리가 매일 보는 국내 리그 활성화 대책, 유소년 축구 키울 고민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NYT 보고서 읽기- 잔치음식 보다 일상 요리법을 찾아야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최근 뉴욕타임스가 또 다시 화제다. 질 에이브런스 편집국장 전격 경질로 한바탕 이슈의 중심에 서더니 이번엔 혁신보고서가 유출돼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30쪽 남짓 읽은 게 전부이긴 하지만) 읽은 느낌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게 진짜 물건이다, 는 거다. 뉴욕타임스의 고민엔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더 관심 있는 분은 보고서 전문과 이 보고서를 소개하는 니먼저널리즘 랩의 기사를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The New York Times is winning at journalism. Of all the challenges facing a media company in the digital age, producing great journalism is the hardest. Our daily report is deep, broad, smart and engaging — and we’ve got a huge lead over the competition.
At the same time, we are falling behind in a second critical area: the art and science of getting our journalism to readers. We have always cared about the reach and impact of our work, but we haven’t done enough to crack that code in the digital era.

무슨 얘기인가? (전통) 저널리즘 영역에선 최고봉이지만, 그걸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영역에선 뒤지고 있다는 것. 특히 디지털 시대에 맞는 코드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많은 경쟁자들이 이 부분에서 앞서 나갈 때 자신들은 뒤쳐져 있다는 처절한 현실 인식을 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맛뵈기로 소개한 기사를 접한 국내 독자들의 반응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뉴욕타임스도 저 정도라니?” 쯤 될 것 같다. 물론 뉴욕타임스는 국내 대부분의 언론보다는, 종이는 말할 것도 없고, 디지털 전략 면에서도 훨씬 앞선다고 생각한다. 직접 가 본 적은 없지만, 그럴 것 같다. 그들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우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기에 하는 얘기다.

하지만 난 뉴욕타임스의 저 진단에 국내 독자들이 과도하게 놀라는 건 ‘스노우 폴 착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뉴욕타임스가 1년에 몇 번 차려내는 잔치 음식에 지나치게 눈길을 많이 줬다는 얘기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보다 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보고서에 나온 대로, 아직은 종이신문도 먹고 살만하기 때문에, 일선 기자들은 고민의 깊이가 덜할 수도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예사롭지 않은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또 우리가 이 보고서에서 정말로 읽어내야 할 것도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전통 조직이 변신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해야 하며, 일상적으로 어떤 변화를 꾀해야 할 지에 대한 나름의 제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혁신보고서는 뉴스룸 전략팀을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그런 조직이 왜 필요한 지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Many newsroom leaders are so consumed with the demands of the daily report that they have little time to step back and think about long-term questions. When we were simply a newspaper, this singular focus made sense. But we must now juggle print, the web, apps, newsletters, news alerts, social media, video, an international edition and a range of stand- alone products.

편집국 간부들은 일상 업무에 매몰돼 있어 긴 안목으로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얘기. 종이란 단일 매체 시대엔 상관 없는데, 다매체 시대가 되면서 이렇게 해선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지적이다.

이젠 경쟁지 뿐 아니라 SNS-링크드인도 잠재적 경쟁자 

이들의 현실인식도 눈여겨 볼만하다. 워싱턴포스트 같은 경쟁지 뿐 아니라 복스 미디어, 야후뉴스, 서카 같은 (우리 언론사 기준으로 치면) 듣보잡 매체(?)들도 두려움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채용 전문 사이트인 링크드인도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어디서 이런 현실인식이 나오는 걸까?

우리는 저널리스트이기 때문에 경쟁자들을 전략보다는 콘텐츠란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버즈피드, 허핑턴포스트, USA투데이가 성공한 건 단순히 목록, 퀴즈, 유명인 사진, 스포츠 기사 덕분만은 아니다. 그들은 소셜, 검색, 그리고 커뮤니티 구축 툴과 전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때론 콘텐츠의 품질이 다소 부족할 때도 (앞에 열거한 미덕들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뉴스는 특별한 콘텐츠라는 인식. 그 인식을 버렸기 때문에 경쟁 지형도를 좀 더 넓게 볼 수 있었던 거다. 이런 관점에서 보고서는 독자개발(Audience Development) 팀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업워시에 근무하던 마이클 베르다임(Michael Wertheim)에게 독자개발팀 책임자 자리를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베르다임은 뉴욕타임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중요한 건 그가 제안을 거절하면서 한 말이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에 있는 그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자.

He explained that for anyone in that role to succeed, the newsroom needed to be fully committed to working with the business side to grow our audience.

무슨 얘기? 그것 제대로 하려면 편집국만으론 안 된다. 비즈니스 쪽과 전폭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뭐 이런 얘기다. 또 다시 혁신보고서에 있는 그림 한 장 감상해보자. 난 저 그림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노력해야 할까?" 뉴욕타임스의 현 주소와 미래 전략을 한 눈에 보여주는 그림.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노력해야 할까?” 뉴욕타임스의 현 주소와 미래 전략을 한 눈에 보여주는 그림.

콘텐츠 전략은 굉장히 복잡 다양한 데, 편집국에선 그 동안 ‘퀄리티 저널리즘’이란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버렸다는 것. 그래선 제대로 된 콘텐츠 혁신이 힘들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이 부분 역시 읽으면서 깊이 공감했다.

이 외에도 이 보고서는 패키지전략 같은 것들도 제안하고 있다. 특히 뉴욕타임스의 방대한 ‘퀄리티 저널리즘’ 아카이브는 큰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억나는가? ‘노예 12년’ 영화 개봉을 앞두고 뉴욕타임스가 몇 백 년 만에 정정기사를 냈다는 소식. 뉴욕타임스 속엔 미국 역사가 담겨 있다.) 이런 부분들은 전략적인 차원에서 충분히 공감해볼 수 있다.

자, 이제 맺자. 난 서두에 (우리 집안에선 거의 국보법 위반에 해당하는) 마나님 ‘디스 발언’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끝에 다시 한번 그 부분을 거론해보자. 난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는 잔치음식으로 멋진 이미지를 쌓아 온 뉴욕타임스의 처절한 일상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우리 집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평균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고백을 하는 것과 (차원은 다르지만) 비슷한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보고서가 우리들에겐 더 와닿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땅의 많은 온라인 저널리즘 전문가들이여. ‘스노우 폴’에 대한 짝사랑을 벗어 던져라. 그리고 그들의 일상 속으로, 우리 못지 않게 고민 투성이, 모순 투성이인 뉴욕타임스의 현실 속에서 해답을 찾으라. 그래야, 우리가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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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잔칫상, 차범근, 그리고 NYT 혁신 보고서”에 대한 4개의 댓글

  1. myidwill
    5월 20, 2014

    khryoo에서 이 항목을 퍼감.

  2. 핑백: NYT의 놀라운 ‘관련기사’ 패키지 전략 | Hyper/Text

  3. 나름
    7월 22, 2014

    바보

  4. Byunghun
    8월 31, 2014

    이런 자가반성(?)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부터가 이미 넘사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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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트리는 5월 20, 2014에 님이 Media에 게시하였으며 , , 태그가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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