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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가게와 배달 서비스, 그리고 망중립성


한번 상상해보자. 오후 4시. 배가 고프다. 고민하던 A씨는 피자를 시켜 먹기로 했다. 마침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피자 배달 서비스 전단지로 눈이 갔다. 곧바로 B가게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물어봤다. “배달 서비스도 제공합니까?”

이 때 B가게는 어떤 대답을 할까? “네”란 대답을 기대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B가게가 이런 대답을 한다면? “아뇨. 배달 서비스는 안 합니다. 다만 주문을 하시면 저희가 피자를 구운 뒤 손님께서 계신 곳까지 전달해드리긴 합니다.”

궁금해진 A씨가 이유를 묻자 B가게는 이렇게 대답한다. “피자를 집까지 전달해주긴 하는데, 배달 서비스를 하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에게 피자를 전달해주는 건 우리 사업의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대체 뭔 얘기를 하려는 걸까?”란 생각을 할 것 같다. 이쯤에서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자. 앞의 비유는 내 얘기가 아니다.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브랜드X란 회사가 케이블 서비스업체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실제로 나온 얘기다. 그것도 대법원 판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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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 

‘브랜드X vs 미국 케이블&통신연합’은 망중립성 역사에서 중요한 판결이다. 자잘한 얘기 생략하고 결론부터 얘기하자. 2005년 미국 대법원은 브랜드X란 인터넷 업체에게 패소 판결을 한다. 2002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케이블 브로드밴드 인터넷 서비스를 정보 서비스로 분류한 결정에 잘못된 게 없다는 게 판결 요지다.

물론 대법원은 FCC의 관할권 문제를 주로 거론했다. FCC 같은 기관들은 ‘애매한 관할권’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할 권한이 있다는 것. 그러니 1996년 통신법 제정 당시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초고속 인터넷을 정보 서비스로 분류한 건 권한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판결 골자였다.

그런데 디애틀랜틱은 Antonin Scalia Totally Gets Net Neutrality란 기사를 통해 당시 소수 의견을 낸 안토닌 스칼리아 판사를 주목한다. 최근 FCC의 망중립성 원칙이 다시 논란이 되면서 당시 스칼리아 판사의 소수의견 논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기사의 골자다.

(망중립성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은 저 기사와 함께 Net Neutrality: A Guide to (and History of) a Contested Idea를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스칼리아는 6대3으로 결정난 판결에서 소수의견을 냈다. 과연 케이블 브로드밴드 인터넷은 일반 전화선을 이용하는 다이얼업 모뎀 인터넷 서비스와 다른 것일까, 란 문제가 당시의 쟁점. 당연하지만 1996년 통신법의 규정이 중요했다.

스칼리아 판사가 반대의견을 낼 때 중요하게 생각한 건 ‘결합 서비스의 한 부분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였다. 디애틀랜틱이 인용한 스칼리아 판사가 다수의견에 반대한 이유를 그대로 옮겨보자.

The relevant question is whether the individual components in a package being offered still possess sufficient identity to be described as separate objects of the offer, or whether they have been so changed by their combination with the other components that it is no longer reasonable to describe them in that way.

디애틀랜틱은 이 부분을 전해주면서 “브로드밴드 인터넷 서비스와 이메일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할 경우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까? 아니면 전혀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까?”란 질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질문이 제기되는 건 당시 브로드밴드 인터넷 서비스가 1996년 통신법 제정 당시에는 없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법 해석의 문제였던 셈.

FCC에 포괄적인 ‘유권해석 권한’을 부여한 다수 의견과 달리 스칼리아 판사는 “브로드밴드 인터넷 서비스의 독특한 특성’에 주목한다. 피자 비유는 이 때 동원된 것이다. 스칼리아가 보기에 당시 케이블업체들은 단순히 웹을 연결하는, 즉 인터넷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접속 속도가 빠르다’는 자랑도 무지하게 많이 하고 있었다. 이런 차별성을 강조하는 자체가 단순한 정보서비스 차원을 넘어선다는 게 스칼리아 판사의 유권해석이었다. 그러면서 피자 비유와 연결시켰다. 그 부분은 역시 디애틀랜틱에 인용된 부분을 그대로 옮겨 온다.

The myth that the pizzeria does not offer delivery becomes even more difficult to maintain when the pizzeria advertises quick delivery as one of its advantages over competitors. That, of course, is the case with cable broadband.

저 주장에 대한 판단은 각자 해 보시라. 어쨌든, 케이블업체들이 제공하는 브로드밴드 인터넷 서비스는 (그 당시 유행하던) 다이얼업 모뎀, 즉 전화선을 이용한 인터넷 서비스를 대체하고 있었다. 그러니 (브로드밴드 인터넷을 정보 서비스로 분류할 경우) ‘정보 서비스’로 통신서비스를 대체하는 다소 이상한 상황이 연출된다고 스칼리아는 비판했다.

 알듯 모를듯 한 망중립성 공방

민주당 의원들을 비롯한 망중립성 옹호자들이 “브로드밴드 인터넷을 통신 서비스로 재분류하라”고 요구할 때마다 “왜 저런 억지를 부릴까?”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저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럴만도 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스칼리아 판사가 2005년 대법원 재판 당시 우려했던 부분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재분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컴캐스트를 비롯한 케이블 사업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가 굳이 그런 무리수를 둘 것 같지도 않다.

어쨌든 망중립성의 현재 쟁점은 특급회선 제공 문제다. 정확하게는 “브로드밴드 서비스 제공자가 제휴서비스에 대해서만 독점적으로 특급 서비스(priority service)를 제공하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입증할 때까지는) 불법이다”는 규정이다. ‘제휴 서비스(affiliate service)’란 망사업자가 자신들의 네트워크에서 다른 인터넷 서비스와 경쟁하면서 운영하는 사업을 말한다. 이 규정 덕분에 컴캐스트가 넷플릭스 같은 업체와 특급 서비스 계약을 맺는 건 합법 우산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제휴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망중립성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사람들은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때문에 이런 지경까지 왔다”면서 비판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원위치(정확하게는 제대로 위치)시키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이후 행보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아는 사람 중 최고 통신 전문가인) 조영신 박사 말대로 오바마 행정부가 (통신단체 로비스트 출신인) 톰 휠러를 FCC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 확산’이란 정책 목표를 밀어부치겠다는 의지인 것 분명해 보인다. 조 박사 페북에 올라온 글을 그대로 인용한다.

Tom Wheeler를 임명한 사람이 바로 오바마. 오바마는 무슨 생각으로 Tom Wheeler를 임명했을까. 적어도 난 오바마가 정책의 우선 순위로 Broadband Deployment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특성상 Broadband의 확산을 위해서는 민간 사업자인 케이블 사업자를 포함한 통신사업자의 적극적인 시장 투자가 필요한데, 그동안 FCC는 망중립성을 이유로 그들과 대척점에 있었다. 정부의 브로드밴드 정책에 대해서 반신반의하고 있는 업계에게 시장 친화적인, 그리고 투자를 하더라도 손해보지 않을 것이라는 정책적 신호를 보내는데 있어 Tom Wheeler만한 인물이 있을까… 

국내 언론들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지만, 지난 1월 항소법원 판결 때도 ‘브로드밴드 확산’은 판결의 중요한 잣대였다. 항소법원이 FCC가 통신법 706조에 따라 인터넷에 대한 관할권이 있다는 판결을 할 때도 그 부분을 중요하게 간주했기 때문이다. 좀 길긴 하지만 내가 ‘망중립성 공방 유감’이란 칼럼에서 쓴 부분을 그대로 옮겨 온다.

1996년 통신법에선 고속인터넷의 최저 기준을 200kbps 으로 잡았다. 일반 이용자들이 음성, 데이터, 그래픽 등을 큰 무리 없이 주고 받으려면 그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FCC는 2010년 “고속 인터넷 보급이 충분하지 않다”고 선언한다. 그 사이 고화질 동영상 등이 대중화된 때문이다. FCC는 이런 이유를 내세워 초고속 인터넷은 4mbps는 돼야 한다고 새롭게 규정했다. 이런 기준을 적용할 경우 미국인 1천400만~2천400만 가량이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속 인터넷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선 망 사업자에 대한 규제 권한이 필요하다는 게 FCC의 주장이었다. 물론 통신법 706조는 그 근거 조항이었다.
항소법원은 FCC의 이런 대의명분에 동의했다. 고속 인터넷 보급 확산을 위해선 망 사업자의 ‘독주’를 견제해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추상적 원론’ 못지 않게 ‘구체적 정책 목표’가 중요한 잣대로 작용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망중립성 문제는 올 연말까지 계속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과정에서 FCC의 정확한 입장이 드러날 테지만, 현재까지만 봐선 나도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을 향해 갈 지. 그 부분은 좀 더 공부를 한 뒤 다시 이어가기로 하자.

어쨌든 오늘은 망중립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졸지에 ‘피자 가게와 배달 서비스’란 해묵은 비유가 새삼 조명받고 있다는 정도만 언급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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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트리는 5월 22, 2014에 님이 Tech에 게시하였으며 , , 태그가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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