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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미국의 망중립성 전쟁


망중립성. 망 사업자는 자신들의 망을 타고 흐르는 콘텐츠를 차별해선 안 된다는 원칙. 인터넷 콘텐츠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엔 어떠한 차별도 존재해선 안 된다는 원칙(end to end). 조금은 이상적인 이 원칙이 지금 미궁 속에 빠져 버렸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지난 1월 차별금지와 차단금지를 규정한 연방통신위원회(FCC)의 2010년 오픈인터넷 규칙을 사실상 무력화한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버라이즌을 비롯한 케이블 사업자들의 완벽한 승리처럼 보인다.

대표적인 게 FCC가 새롭게 마련한 망중립성 원칙이다. FCC는 지난 5월 급행회선(fast lane) 허용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망중립성 원칙을 발표했다. 이 원칙은 약간의 논란을 거치긴 했지만 FCC 전체 회의까지 통과하면서 힘을 받았다. FCC는 현재 새 망중립성 원칙에 대한 규칙공고(NPRM)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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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FCC가 완전히 밀리는 모양새다. 물론 톰 휠러 FCC 위원장은 계속 “오픈인터넷 대의는 절대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 땅땅치고 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놓고 보면 FCC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을 1996년 통신법의 ‘타이틀2’로 재분류하는 방안이 있긴 하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다. 당장 케이블 사업자들이 정면 반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는 하원도 FCC를 압박하고 있다.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인터넷 서비스 사업을 타이틀2로 재분류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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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사실상 물 건너 간 분위기. FCC가 어떤 제스처를 취할 지 몹시 궁금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 흥미로운 뉴스 하나가 내 눈에 띄었다. FCC가 4mbps로 돼 있는 초고속 인터넷의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워싱턴포스트가 첫 보도를 한 뒤 여러 언론들이 인용 보도를 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토대로 쓴 내 기사도 함께 링크한다.

4년 만의 기준 조정…FCC의 회심의 한 수? 

자, 일단 내용부터 한번 살펴보자. FCC는 지난 2010년 초고속 인터넷 기준을 다운로드 4mbps, 업로드 1mbps로 규정했다. 종전 200kbps였던 것을 대폭 상향 조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걸 4년 만에 다시 조정하겠다는 게 FCC의 방침이다. 다운로드 10~25mbps, 업로드는 2.9mbps로 재조정하겠다는 것.

물론 명분은 충분하다. 하다 못해 넷플릭스 HD 영화 한 편을 보려고 해도 5mbps는 돼야 한다는 것. 게다가 요즘은 n스크린 시대 아닌가? 집안에서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사용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 아무리 안 돼도 10mbps는 돼야 한다는 게 FCC가 표면적으로 내세운 명분이다.

언뜻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최근 4년 사이에 HD 영상이 대폭 보급됐기 때문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정책.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일까? 그것도 케이블 사업자들과 망중립성 문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여기서부터 상상의 나래를 한번 펼쳐봤다. 뭔가 고도의 수가 개입돼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 때문이다.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지난 1월 항소심 재판 당시 읽었던 판결문 생각이 났다. 당시 대중적으로 알려진 쟁점은 차별금지와 차단금지 무력화 판결이었다. 하지만 당시 쟁점이 됐던 문제가 또 있다. FCC가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규제권을 갖느냐는 부분이었다. 1996년 제정된 통신법 706조가 FCC에 인터넷에 대한 규제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냐는 부분 역시 핵심 쟁점이었다.

항소법원은 이 부분에선 FCC 손을 들어줬다. FCC가 통신법 706조만으로도 인터넷에 대한 규제 권한을 갖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통신법 706조가 대체 뭘까? 1996년 통신법의 제 706조는 고도통신서비스를 촉진하기 위한 조항으로 다음 두 개 항으로 구성돼 있다.

  1. FCC와 주공익위원회에게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하게 고도서비스의 보급을 장려할 의무를 부과하고, 
  2. FCC는 주기적으로 고도 서비스의 보급현황을 조사하고 보급실적이 미약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투자 및 경쟁 촉진정책을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통신법이 제정되던 1996년 무렵엔 아직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 법에 인터넷 관련 규정을 담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법 정신을 토대로 신규 서비스에 어떻게 적용할 지를 판단해야 한다. 지난 1월 항소법원이 한 판결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FCC, 항소법원이 부여한 안전판 다시 활용?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FCC가 초고속 인터넷 기준을 높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난 왜 항소법원 판결을 떠올렸을까? 배경 설명을 위해선 내가 썼던 칼럼 두 편을 읽어보시라.

당시 FCC가 인터넷 규제 권한을 인정받은 가장 큰 무기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 확산’이란 정책 목표였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ISP들의 전횡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것. 확고한 망중립성 원칙도 없는 상황에선 통신법 706조는 최소한의 안전판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항소법원 판결이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보자. FCC는 왜 초고속 인터넷 기준을 높이려 할까? 고속 인터넷 기준을 높인다고 해서 서비스가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일단 법을 한번 살펴보자. 아스테크니카 기사에 따르면 FCC는 매년 브로드밴드 보급률을 조사할 의무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속 인터넷 기준을 높이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브로드밴드 보급률이 낮아질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될까? 통신사들을 압박할 수 있다.

FCC의 가장 최근 보고서인 2012년 조사에선 미국인 1억1천900만 명이 브로드밴드 인터넷 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 중 1천900만 명은 아예 브로드밴드 망이 깔려 있지 않은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1억 명은 브로드밴드 서비스 지역에 살고 있긴 하지만 서비스 가입할 능력이 안 돼 못 쓰고 있다는게 당시 보고서의 결론이었다. (참고로 한 해 전인 2011년에는 브로드밴드 망이 깔려 있지 않은 지역에 사는 사람이 2천600만 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초고속 인터넷의 기준을 상향 조정하면 어떻게 될까? 디지털 소외 계층이 대폭 늘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브로드밴드 인터넷 망이 깔려 있지만 서비스에 가입할 여력이 못되는 사람들이 1억 명을 훌쩍 넘게 될 것이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케이블 사업자들의 고속 인터넷 요금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이 제기되지 않을까? 망중립성 원칙을 통해 차별금지, 차단금지 등을 압박할 수 없게 된 FCC는 여론전을 통해 케이블 사업자들을 우회 공략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난 통신 전문가가 아니다. FCC 정책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고. 다만 우연이라고 하기엔 공교로운 동시다발적 사건을 지켜보면서 내 나름대로 소설을 한번 써 봤을 따름이다. ‘타이틀2로 재분류하지 마라’는 케이블 업계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고속 인터넷 기준 강화’란 수를 들고 나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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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트리는 6월 1, 2014에 님이 Tech에 게시하였으며 , , , 태그가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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