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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맞춤형 신문, 하늘에서 떨어진 새 개념일까?


1990년대 중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디지털이다’를 인상적으로 읽은 기억이 있다. 당시만 해도 첨단 컴퓨터 문명 세례를 제대로 받기 전. 지금은 커뮤니케이션북스로 바뀐 박영률출판사에서 나온 그 책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기자 초년병이었던 나는 ‘나만을 위한 신문(The Daily Me)’이란 개념에 매혹됐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그 때 뿐. 그 뒤 ‘나만을 위한 신문’이란 개념은 잊고 지냈다.

요즘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안줏거리로 떠오르면서 거기서 거론된 혁신전략을 놓고 얘기할 기회가 많아졌다. 디지털 뉴스 전략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은 뉴욕타임스 보고서에서 지적한 내용들에 대해 대부분 공감들을 하는 것 같다. 사실 대부분 그런 내용들이다.

다만 한 가지. 개인화(personalization) 부분에 대해선 의구심을 나타내는 분들이 꽤 있었다. (아, 물론 디지털 퍼스트 전략에 대해서도 썩 내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다. 디지털 퍼스트전략이란 게, 종이신문 입장에선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만을 위한 신문'이란 개념을 제시했던 '디지털이다'

‘나만을 위한 신문’이란 개념을 제시했던 ‘디지털이다’

개인맞춤형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정의

우려하는 이유는 대개 비슷하다. 공적 담론을 전달하는 게 언론의 기본 기능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니 지나친 개인화 서비스를 하면 공적 담론이 실종될 테고, 그렇게 될 경우 건전한 민주주의의 토대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게 대체적인 논리다. 썩 동의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가능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번 따져보기로 했다. 과연 개인화 서비스라는 게 디지털 시대의 전유물인지를. 결론부터 먼저 얘기하자.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언론사들이 그 동안 많이 해 왔던 걸, 그리고 하고 싶었던 것을, 좀 더 범위만 넓히는 것일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한번 따져보자. 전국에 배달되는 종이신문은 똑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요즘이야 전국 동시 인쇄를 하기 때문에 크게 차이가 없지만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1면 톱이 달랐다. 어제 같은 선거가 있는 날은 지방 독자들은 아예 신문에서 결과를 볼 수 없었다. 발송 시간 한계 때문이었다.

지면 안 쪽으로 들어가면 이런 현상은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예 지역판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지역면엔 그 지역 소식만 모아서 보내줬다. 당연한 얘기지만, 경상도판 한겨레신문과 전라도판 한겨레신문의 지역면은 완전히 다른 신문이다.

맞춤형 신문의 좀 더 분명한 사례는 스포츠신문에서 볼 수 있었다. 광주에 배달되는 스포츠신문과 대구에 배달되는 스포츠신문은 1면 톱 기사가 매일 다르다. 당연한 얘기지만 광주판은 해태(지금은 기아) 경기가 톱으로 올라가는 반면, 대구판은 삼성 경기를 주요하게 다룬다. 두 팀이 맞붙을 경우에도 제목 톤은 달라진다. 지역 독자 정서에 맞는 편집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얘기한 것들은 우리가 신문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편집 관행이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신문을 만드는 건 편집의 기본이다. 그래야 좀 더 많은 지역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맞춤형이 아니라 독자 타깃 정교화

물론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에서 얘기하는 개인화는 신문 편집과는 차원이 다르긴 하다. 단순히 지역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개인 단위로 맞춤형 편집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혹시 자이트란 아이패드용 앱을 써 본 적 있는가? 지금은 플립보드에 인수된 자이트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개인맞춤형 편집이 잘 된 미디어였다. 기사를 볼 때마다 맨 아랫 부분에 “이 언론사 기사를 더 보고 싶으냐?” “이 기자가 쓴 기사를 더 보고 싶으냐?” 혹은 “이런 유형의 기사를 더 보고 싶으냐?”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이거 한 두 달 눌러주다보면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뉴스들을 기가 막히게 잘 선별해준다. 물론 카테고리 분류도 자기가 그냥 하면 된다.

이런 얘기를 들은 많은 분들은 ‘공적담론 상실’을 우려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독자 타깃화는 신문사의 영원한 로망이었다. 단지 그 동안은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에 타깃 단위를 경상도, 전라도 식으로 크게 잡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젠 그게 잘 안 먹힌다. 간단한 예를 들어봐도 알 수 있다. 경상도에 산다고 다 삼성 경기를 응원하는 건 아니다. 전라도에서 이사 온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또 대구에 살지만 삼성보다 신생팀인 엔씨를 더 많이 응원하는 사람도 있다. 그도 아니라면 아예 야구에 관심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는 이런 취향을 구분할 방법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신문들은 대구에 살면 전부 대구 정서를 갖고 있을 것이란 전제 하에 편집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특히 요즘처럼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진 시대가 되면서 이젠 대구 사람이란 범주 자체가 갖는 소구력이 급속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접근해서는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제대로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덴, 미디어 시장 경쟁이 20년 전보다 훨씬 치열해진 부분도 강하게 작용했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다. 개인화란 표현 때문에 맞춤형 편집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측면이 굉장히 강하단 의미다. 소비자 입장에선 개인화이지만, 판매자 관점에서 보면 ‘독자 세분화’라고 해야 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얘기하는 ‘personalization’ 역시 그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독자를 좀 더 세분화해서, 개인의 욕구에 맞는 상품을 제공하라. 신문사 용어로 바꾸자면 “그 동안 경상도 판, 전라도판으로 편집하던 걸 경상도 사는 개똥이, 전라도 사는 말똥이로 좀 더 타깃을 명확하게 한 편집을 하라”는 얘기다. 물론 지금 당장은 그렇게까지 개인화를 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기술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개인화를 하다 보면 궁극적으론 모든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언론이란 개념에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자, 무슨 얘기인지 와닿는가? 개인화란 말 때문에 거부감을 가졌다면, 독자 세분화란 말로 한번 바꿔보라. 그럼 좀 더 명확하게 와닿지 않는가? 실제로 넷플릭스 같은 업체는 바로 독자 세분화 전략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똑 같은 콘텐츠업체인데 언론사라고 그런 작업 못 하라는 법은 없다. 다만 그런 투자를 할 돈과 시간 여유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게 관건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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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트리는 6월 5, 2014에 님이 Media에 게시하였으며 , , , , , 태그가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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