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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저널리즘은 ‘기레기’를 대체할 수 있다


LA타임스가 지난 3월 캘리포니아주 인근에 발생한 지진 보도로 관심을 끌었다.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그 기사를 처리한 게 로봇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당연히 논쟁이 뒤따랐다. 과연 로봇이 기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 란 질문. 한 동안 여러 매체들이 로봇 저널리즘 관련 얘기를 다뤘다.

로봇 기사 얘기가 나오면 꼭 따라붙는 말이 있다. 바로 알고리즘이다. 결국 로봇이란 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니, 알고리즘으로 움직이는 것 아니겠냐는 얘기. 그러니 딱 거기까지 아니겠냐는 얘기다.

물론 맞는 얘기다. 로봇 기자라고 해서, 정말 로봇이 돌아다니면서 취재한 뒤 기사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LA터임스 로봇 기자는 우리가 영화에서 봤던 것 같은 실체가 있는 로봇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사람 형태를 띤 건 더더욱 아니다. 어떤 소프트웨어가 주어진 알고리즘에 따라 명령을 처리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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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로봇 기사 얘기를 쓰게 된 건 오늘 블로터에 올라온 기사 때문이다. 일단 그 기사부터 한번 감상해보시라. (참고로 스크롤의 압박이 꽤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끝까지 읽진 못했다. 또 한 가지. 제목은 좀 이상한 느낌이 든다. 로봇 저널리즘은 기레기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위 기사에 주목한 건 마지막 부분이다. 그 부분을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로봇 저널리즘의 위협은 실체가 없다. 로봇 저널리즘은 그보다는 인간 저널리즘 수준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취재와 보도, 그리고 이에 대한 평가는 아직은 사람으로서 저널리스트가 실행할 수 밖에 없다. 로봇이 이뤄내는 저널리즘의 실행은 그저 ‘신기함’일 뿐, 완벽하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저널리즘 영역에서는 로봇 자체도 편향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봇에 겁 먹지 말고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 사람으로서 기자들이 현재 겪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로봇 저널리즘의 위협, 정말로 실체가 없을까 

난 로봇 저널리즘의 위협이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왜냐고? 현재 기자들이 하고 있는 일의 상당 부분은 로봇 저널리즘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얘기냐고? 자, 그럼 처음으로 한번 돌아가보자. 로봇 저널리즘은 결국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창의력이 없이 주어진 명령에 따라 그냥 자료를 처리할 뿐이다.

당연히 ‘인간 기자’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미안한 얘기지만, 난 현재 기자들이 하는 일 중 상당 부분은 ‘알고리즘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한다. 수습 교육은 알고리즘을 익히는 과정이고. (아, 물론 이 얘기에 발끈할 기자분들 많을 것이다. 너무 흥분하지 마시라. 하는 일 중 상당부분이라고 했지, 기자들이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이란 얘긴 절대 아니다. 나도 기자인데, 설마 그렇게까지 자학을 할까?)

자, 한번 따져보자. 업체에서 보도자료를 받는다. 그럼 어떻게 기사를 쓸까? 리드문을 쓴 뒤, **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어쩌고 저쩌고 쓴다. 그렇게 리드와 다음 문장을 쓰고 나면, 간략한 내용이 나오고, 그런 다음엔 어떤 사람의 멘트가 한 두 개쯤 들어간다. 논쟁이 있는 사안일 경우엔 양측 주장을 담아준다. 그리고 끝. 기사문 외에 이런 식으로 쓰는 글 혹시 본 적 있는가?

이번엔 스포츠 경기를 취재해서 기사를 쓴다고 가정해보자. 승패가 중요한 경기일 경우엔 누가 이겼는지가 앞에 나올 것이다. 그런 다음 누가 골을 넣었는지, 혹은 누가 결정적인 홈런을 쳤는지, 혹은 누가 멋진 투구를 했는지 등이 나온다. 경기 내용 간단하게 요약해준다. 그리고 끝. 전 국민이 TV로 경기를 다보고 한바탕 흥분을 가라앉힌 지 두 세 시간 만에 나온 기사들도 대개 이런 식이다. 포털에 가보면 이런 기사들 넘쳐난다.

우리가 흔히 기사 형식이라고 부르는 말을 컴퓨터 용어로 바꾸면 ‘기사 알고리즘’이다. 매일 매일 정신없이 생활하는 기자들은 주어진 알고리즘에 따라 정형화된 글들을 아무 생각없이 쏟아낸다. 창의력을 발휘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어설프게 창의력 발휘했다간 데스크의 불호령이 떨어지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더 중요한 이유는, 알고리즘에 익숙한 생활을 몇 년 하다보면 그냥 자동으로 기사가 쏟아져나온다. 그 반대급부가 상상력 실종이다. 알고리즘에 맞는 글을 신속하게 쏟아내지만, 자유로운 글쓰기 능력은 갈수록 사라지게 된다.

믿기지 않는 분들. 가끔 후배 기자들이 다른 잡지 같은 곳에 기고한 외고들 한번 읽어보시라. 그런 글들 읽으면서, 자식들 우리 매체에 저렇게 발랄한 글 좀 쓰지, 라고 생각한 적 혹시 없는가? 왜 안 될까? 그곳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로봇 저널리즘의 진짜 핵심은 뭘까?

자, 정리해보자. 난 로봇 저널리즘은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별 것 아닌 것, 이라고 폄하하지 말라는 얘길 하고 있다. 더 심하게 얘기하면, 많은 기자들이 언론사에서 배우고 실행하고 있는 게 바로 ‘알고리즘 저널리즘’이란 얘길 하고 있다.

그래서 난 로봇 저널리즘이 대중화되면 꽤 많은 기자들의 일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더 잘 쓸 수도 있다. 스포츠 보도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야구나 축구 경기 끝나면 곧바로 관련 자료를 정리해서 보도자료로 준다. 그거 정리하는 건 로봇이 더 잘 할 수도 있다. 어차피 보도자료 정리해주는 쪽에서도 경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아는 선에서 만들어줄 터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보도자료를 보내왔다고 가정해보자. 솔직히 기업 보도자료 읽고 리라이팅 하려면 성가시다. 그런데 로봇이라면, 그런 감정 기복 없이 잘 처리할 수도 있다. 오타도 덜 낼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완벽하게 구현되진 않았을 뿐더러, 가격도 비쌀 터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채산성도 맞지 않을 테고.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기자 몇 명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저렴하고 효율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내가 기자 노릇하는 동안 그런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

어제 난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했던 화가 메소니에 관련 글을 쓴 적 있다. 그 글에서 주장했던 곳과 마찬가지 주장을 하려는 것이다. 로봇 저널리즘이 제기하는 문제는 딱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이제 보도자료 처리나 단순 사실 보도는 ‘로봇의 영역’으로 넘겨야 할 때가 됐다는 것.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알고리즘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알고리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다운 글쓰기와 인간다운 분석. 그리고 인간다운 감성을 가진 저널리즘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다.

“로봇 저널리즘은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기레기를 대체할 수 있다. 기자들이여, 알고리즘의 노예생활을 이젠 그만 끝내시라. 알고리즘을 벗어던져야 진정한 (사람)기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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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저널리즘은 ‘기레기’를 대체할 수 있다”에 대한 1개의 댓글

  1. 핑백: AP통신의 ‘로봇 기자’ 도입, 어떻게 봐야 할까 | Hyper/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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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트리는 6월 20, 2014에 님이 Media, Tech에 게시하였으며 , , 태그가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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