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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기반 보도’의 대표주자 SCOTUSblog


2012년 6월29일. 미국 대법원에선 ‘오바마케어’로 통하던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 개혁 법안의 위헌 여부 판결이 나올 예정이었다. 건강보험 관련 법은 당시 재선 선거전을 앞두고 있던 오바마 대통령의 운명을 좌우할 이슈 중의 이슈였다. 당연히 치열한 취재 경쟁이 벌어졌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 쟁점은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것이 합헌이냐는 부분. 모든 매체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첫 보도는 이날 오전 10시 7분 CNN이 쐈다. 그로부터 몇 분뒤엔 폭스뉴스가 보도를 했다. 내용은 “건강 보험 강제 가입은 위헌”이었다. 폭스뉴스 보도가 나온 지 몇 분 뒤 이번엔 한 블로그가 관련 보도를 했다. 내용은 이랬다. “건강 보험을 강제 가입하도록 한 것은 일종의 세금으로 볼 수 있다. 헌법은 세금을 허용한다. 따라서 의무가입 조항은 합헌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CNN, 폭스를 비롯한 많은 전통 매체들은 대법원 판결을 잘못 이해했다. SCOTUSblog란 조그만 블로그 사이트가 대법원 판결 요지를 정확하게 전달해줬다. SCOTUSblog 보도가 나온 뒤 CNN과 폭스는 곧바로 오보를 수정했다.

미셸 스티븐스가 ‘Beyond News’ 에서 소개하는 이 사례는 SCOTUSblog가 전통 매체나 독자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지 한 눈에 보여준다. (참고로 SCOTUSblogg는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의 약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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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문 사이트 SCOTUSblog

SCOTUSblogg란 이름이 생소한 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이 사이트는 딱 한 놈만 집중적으로 팬다. 바로 미국 대법원. 다시 말해 대법원 전문 사이트다. 그런데 이 사이트의 내공이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늘 경탄해마지 않는 미국의 ‘작지만 강한 사이트’의 표분 중의 표본이라고 할만하다.

SCOTUSblog가 어떤 사이트인지 한번 살펴보자. 이 사이트를 만든 사람은 변호사들이다. 톰 골든스타인(Tom Goldenstein)과 에이미 휴(Amy Howe). 대법원 소송 전문 로펌을 운영하던 두 사람은 지난 2002년 SCOTUSblog를 만들었다. 자신들의 장기를 살려서 대법원 관련 보도 쪽에 초점을 맞췄다. (아, 참고로, 이 두 사람. 부부다.)

이 사이트엔 취재 기자도 한 명 있다. 라일 데니스톤(Lyle Denniston)이란 분. 올해 연세 팔순을 훌쩍 넘긴 백발 성성한 할아버지 기자분이시다. 1953년부터 대법원 출입을 하신 분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보스턴글로브 등 미국 유력 언론사 기자를 역임하셨다. 대법원 관련 보도에선 미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SCOTUSblog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은 분은 임정욱 님의 아래 글을 한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공중파뉴스에 나와 논평하는 블로거란 제목은 다소 오해의 소지는 있을 것 같다. 이 분 원래 대법원 소송 전문 변호사이니 말이다.) 그 밑에 붙여놓은 위키피디아 관련 글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다시 오바마케어 합헌 판결 나오던 날로 돌아가보자. SCOTUSblog가 대법원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최초 보도를 한 지 18분 뒤에 뉴욕타임스가 보도를 했다. CNN이나 폭스처럼 속보에 목을 매는 대신, 정확한 보도를 지향하다보니 다소 늦었다. 하지만 ‘정확하면서 빠른 보도’ 경쟁에선 SCOTUSblog에 한참 뒤졌다. 덕분에 오바마케어 보도를 보기 위해 50만 명 이상이 SCOTUSblog를 찾았다고 한다.

사실 기반 보도에서 지식 기반 보도로 

SCOUTSblog 설립자인 톰 골드스타인.

SCOUTSblog 설립자인 톰 골드스타인.

미셸 스티븐스는 ‘비욘드 뉴스’에서 SCOTUSblog를 대표적인 지혜 저널리즘(wisdom journalism) 사례 중 하나로 꼽고 있다. 100% 공감한다. (내가 공감 안하면 어쩌겠나. 대한민국 기레기 주제에 석학의 정교한 이론에 어이 감히 토를 달리요?) 난 앞으로 국내 온라인 저널리즘 역시 이런 유형의 모델이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한번 따져보자. 규모는 작지만 SCOTUSblog는 적어도 대법원 관련 보도에 관한한 미국 최고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내로라하는 매체들도 이들의 전문성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현재 이 사이트의 스폰서는 블룸버그의 법 관련 전문 뉴스 서비스 블룸버그 로(BLOOMBERG LAW)다.

SCOTUSblog은 전형적으로 지식기반 뉴스를 지향한다. 팩트보다는 맥락에 초점을 맞춘 보도. 어설픈 속보를 지양하고- 사실 그 인력으로 속보 경쟁할 수도 없지만-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보도로 승부한다. 딱딱하고 재미 없는 법 전문 사이트, 그것도 대법원이란 좁디 좁은 타깃을 갖고도 엄청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은 바로 운영자들의 전문 지식 덕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온라인 뉴스 사이트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매체도 적지 않다. 그런 매체들이야 ‘규모의 경제’로 밀어부치면 된다. 하지만 한정된 인력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뉴스 사이트들은 ‘지식 기반 보도’로 과감하게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 저것 다하다가는 일하는 사람 생고생하고, 결과물은 시원찮은 빈곤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국 대법원 소송 관련 기사를 쓰는 분들은 SCOTUSblog를 자주 이용해보시라. 그들이 어느 정도 깊이와 식견으로 승부하는 지 벤치마킹해보란 얘기다. 그게 요즘 같은 ‘매체 난립 시대’에 중소 언론사가 살아남는 한 방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물론 그러자면 그런 목표에 맞게 조직을 정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비욘드 뉴스’에 나온 문구를 인용하는 걸로 대신한다.

사고 방식 뿐 아니라 저널리즘을 수행하는 방법을 좀 더 광범위하고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한다. 사실을 수집하는 작업 대신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주된 임무가 될 경우엔 그 동안 고수해 왔던 전통적인 채용 및 승진 방법은 더 이상 적용되기 힘들다. 부서 구조도 바뀌어야만 한다. 공정성과 공평성이 더 이상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없다.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정보 대신 독창적인 관점이 1면 주요 기사의 핵심 부분이 될 것이다. 어떤 사건을 보도하는 방법 만큼이나 저널리즘적인 주장을 하는 기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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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기반 보도’의 대표주자 SCOTUSblog”에 대한 2개의 댓글

  1. 핑백: ‘지식기반 보도’의 대표주자 SCOTUSblog | Hyper/Text | chtcher

  2. tpzvxn
    6월 27, 2014

    좋은 글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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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트리는 6월 25, 2014에 님이 Media에 게시하였으며 , , , 태그가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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