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per/Text

테크와 미디어, 그리고 컬처 관련 고품격 콘텐츠

에어리오와 카세트 테이프 녹음해서 나눠주기


우리가 고등학교나 대학교 다닐 때 자취생들의 필수품 중 하나는 카세트 라디오였다. 카세트를 구비해놓은 ‘행복한 자취생’들에겐 필수품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공테이프. 지금은 SK가 된 선경에서 나온 스매트 테이프가 특히 인기 있었다. 공 테이프의 용도는 뭘까? 당시 인기를 끌던 FM 라디오를 듣다가 괜찮은 음악이 나오면 녹음을 한다. 호사스럽게 더블데크 카세트라도 갖고 있을 경우엔 친구들이 구매한 테이프를 빌려와 복사를 뜨기도 했다.

여기서 질문.  카세트로 음악방송을 녹음하는 행위는 저작권 침해일까? 아닐까? 당연한 얘기지만, 아니다. 이유는? 남의 저작권 있는 저작물을 공적으로 실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세트로 음악방송을 녹음한 뒤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털어주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부턴 좀 복잡해진다. 공적 실연(public performance)에 해당 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엔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

스크린샷 2014-06-27 오후 10.17.48

‘공적으로 실연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최근에 끝난 에어리오와 미국 방송사들 간의 소송에서 쟁점이 된 것이 바로 이런 구분이다. 개인 안테나를 할당한 뒤 지상파 방송을 재전송 해주는 행위가 과연 공적 실연에 해당되느냐 여부가 이번 재판의 쟁점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클라우드 재전송이란 세기의 재판에서 미국 방송사들이 에어리오에 승리했다. 1, 2심에서 패했던 방송사들이 대법원에 가서 뒤집은 것이다.

이번 재판의 판단 근거가 된 미국 저작권법은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기 위해선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나는 에어리오가 방송사의 저작권 있는 콘텐츠를 ‘실연(performance)’했느냐는 것. 또 하나는 실연을 ‘공적으로(publicly)’ 했느냐는 부분이다. 이 두 가지가 다 성립돼야 저작권 침해에 해당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대법원은 에어리오가 케이블TV 사업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다. 케이블 사업자는 1976년 미국 의회가 개정한 저작권법에 따라 방송사업자의 콘텐츠를 공적 실연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일단 대법원은 에어리오의 기술이 케이블사업자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고 봤다. 케이블 사업자는 늘 전송하지만 에어리오는 가입자들이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접속하는 순간부터 전송을 한다는 것. 하지만 이런 기술적인 차이만으론 에어리오가 케이블 사업자와 다르다고 보긴 힘들다고 대법원은 판결했다.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려면 한 가지 요건이 더 충족돼야 한다. ‘실연’을 ‘공적으로’ 해야 한다는 걸 입증해야만 한다. 에어리오가 그 동안 저작권 침해 판결을 받지 않은 건 이 조항 때문이었다.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를 수신한 뒤 곧바로 재전송하는 케이블 사업자와 달리 에어리오는 하나씩 별도로 전송해준다는 점이 인정된 것이다. 이른바 ‘독자적 사본’이란 개념이다.

앞에 한 비유를 적용하자면, 카세트 테이프를 갖고 있는 사람이 가입자에게 노래 하나씩 녹음해서 전달해주는 것과 같은 격이다. 반면 케이블 사업자는 노래를 녹음한 뒤 사람들을 모아놓고 한꺼번에 털어주는 것과 비슷하다. 즉 에어리오는 독자적으로 사본을 만든 뒤 가입자들에게 전달해줬기 때문에 실연을 한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가입자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런 기술적인 차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미국 대법원은 의회가 1976년 법을 고쳐가면서 케이블 사업자를 규제한 것은 ‘저작권 보호’라는 대의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란 점을 강조한다. 네트워크 밑에 숨어 있는 기술적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저작권은 보호돼야 한다’는 대의란 것이다.

공적 실연에 대한 미국 의회의 입장 변화 

이 대목에서 1976년 저작권법 개정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이를 살펴보기 위해선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미국 법원은 케이블사업자를 방송사업자와 다른 것으로 간주했다. 방송을 단순히 전달해줄 뿐이라는 것. 그래서 미국 법원들은 방송 사업자(broadcaster)와 시청자(viewer)란 두 가지 구분에서 케이블 사업자는 시청자로 간주했다.

이런 입장은 1974년 Teleprompter 대 Columbia Broadcasting System 간의 분쟁 때까지 계속 인정됐다. 이 재판에서 법원은 “시청자는 원거리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증폭 장비를 설치한 능력이 없을 것”이란 점을 인정하면서도 “케이블 사업자는 방송사보다는 시청자에 더 가깝다”고 판결했다. 지금으로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판결이다.

13-461_l537.pdf

The reception and rechanneling of [broadcast television signals] for simultaneous viewing is essentially a viewer function, irrespective of the distance between the broadcasting station and the ultimate viewer.

하지만 의회는 1976년 저작권법을 개정하면서 방송사업자와 시청자란 구분을 없애버렸다. 대신 실연(perform)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개정된 저작권법은 실연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perform” an audiovisual work means “to show its images in any sequence or to make the sounds accompanying it audible.”

개정 저작권법은 방송사업자와 시청자 모두 ‘실연’을 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둘 모두 프로그램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연 행위만으론 저작권 침해 운운하기에 충분치 않다. 여기에 의회는 ‘전송조항(Tramsmit Clause)’이란 것을 추가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an entity performs publicly when it “trans- mit[s] . . . a performance . . . to the public.”

1976년 저작권법이 개정된 이후부터 케이블사업자들이 공적 실연을 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다시 말해 지상파를 재전송하기 위해선 라이선스료를 내야하게 됐단 얘기다.

미국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에어리오의 기술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1976년 저작권법 개정 당시 규정한 케이블 사업자와 크게 다를 것 없다고 판단했다. 기술적인 차이보다는 저작물 보호라는 법 정신 쪽에 좀 더 무게를 둔 판결인 셈이다.

다시 맨 앞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난 에어리오의 서비스가 카세트 테이프에서 음악을 하나씩 복제한 뒤 개인들에게 나눠주는 것과 비슷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법적으론 그런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에어리오가 ‘합법’이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최소한 법의 규정 범위를 교묘하게 우회하는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번 대법원 판결에 실망한, 그래서 놀란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정보

이 엔트리는 6월 27, 2014에 님이 Tech에 게시하였으며 , , , 태그가 지정되었습니다.

내비게이션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