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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영화 ‘명량’에 사람들은 왜 열광할까


‘낯설게 하기’란 말이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가 주창한 이 이론은, 이를테면 시어는 일상의 언어와는 다르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한 마디로 시의 기능은 ‘사물을 낯설게 하는 것’이란 게 이 이론의 기저에 깔린 논리다.

그런데 ‘낯설게 하기’는 어떨 때 가장 빛을 발할까? (여기서부터는 순전히 내 생각에 기반한 주장이다. 따라서 전혀 학술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사실 낯설기만 한 것은 그다지 매력이 없다. 그건 그냥 낯설 따름이다. 그런데 익숙한 것에서 낯선 부분을 발견할 때 우리는 재미를 느낀다.

예를 들어보자. 딸 아이가 어릴 때 옛날 얘기를 더러 해 준 적 있다. 예를 들어 백설공주나 리어왕 같은 이야기를 해 준다고 가정해보자. 다 알고 있는 얘기를 매일 반복하면 이내 흥미를 잃는다. 그래서 난 특정 부분에서 이야기를 비틀어버렸다. 이를테면 백설공주가 사과를 먹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재채기가 나서 사과를 못 먹게 되고, 그래서 사과를 떨어뜨렸는데, 마침 바닥에 있던 쥐가 먹고 죽어 버렸어…..라는 식으로 꼬아 버리는 거다.

이렇게 얘길 하다보니 아이는 익숙한 얘기 속에서 낯선 요소를 은근히 기대하는 듯했다. 그리곤 그 부분에 이르게 되면 또 다른 낯선 얘기가 튀어나오길 기다릴 뿐 아니라, 때론 내게 다른 얘기를 강요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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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기가 힘들었던 ‘명량’의 고민 

어제 ‘명량’을 봤다. ‘군도’와 ‘해적’ 그리고 ‘명량’ 중 고민하다가 선택한 작품이었다. 영화 보러 가면서 난 한 가지 점에 관심을 가졌다. “대체 저 익숙하디 익숙한 주제를 갖고 어떻게 두 시간을 떼울까?”

한번 생각해보시라. 이순신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낯설게 하기’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숨겨놓은 여인과의 로맨스를 끼워넣기도 애매하다. 그렇다고 역사적인 재평가를 하기도 부담스럽다. 낯설게 할 요소가 별로 없는 소재. 뻔한 영웅주의나 애국주의를 설파하는 영화로 전락하기 딱 좋은 소재다.

실제로 ‘명량’에는 낯선 요소가 별로 없다. 아니, 감독은 아예 이순신이 왜 악착같이 싸우려 하는 지, 왜 그토록 많은 공을 세운 장수가 그렇게 홀대를 당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그 정도는 관객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이쯤 되면 이 영화에 재미란 요소를 끼워넣는 게 쉽지 않다. 실제로 이 영화엔 관객들이 몰랐던 내용이 별로 없다. 이순신은 12척 남은 배와 사기가 땅에 떨어진 군사들을 독려하면서 300척 이상 대 부대를 이끌고 온 왜군을 물리친다. 그게 이 영화에 나오는 내용의 전부다.

굳이 잔잔한 재미를 꼽으라면 영화 분량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해상 전투 장면. 하지만 요즘처럼 블록버스터 대작이 난무하는 시대에 ‘명량’ 정도 전투신은 그다지 특별하지도, 낯설지도 않다. 김현민 감독으로선 전작인 ‘최종병기 활’처럼 깨알 같은 스토리텔링을 끼워넣을 여지가 별로 없었던 셈이다.

재미도 낯선 발견도 찾아보기 힘든 영화 ‘명량’

나는 이 영화 보면서 딱 한 차례 감정이 뭉클한 경험을 했다. 남편을 잃은 한 벙어리 여인이 겉치마를 벗어서 흔들면서 위험을 알리던 장면. 그러자 피난가던 백성들이 저 멀리에서 소리치면서 응원하는 장면. 그 장면에서 잠시 뭉클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곰곰 생각해보니, 참 어이가 없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허술하기 그지 없는, 어찌보면 억지로 감정을 끌어내려는 장면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이 영화의 허점은 한 두 개가 아니다. 우선 조선 수군이 어떻게 왜군들을 물리쳤는지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감독이 내세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왜군의 두려움, 또 하나는 명량 특유의 조류 변화였다.

그런데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달랑 배 한 척이 버티고 있는 데, 일본 해적왕이라는 자가 이끄는 부대가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지는 게 도무지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조류란 변수를 잘 이용한 이순신의 전략 역시 관객들이 공감할 정도로 설득력을 갖긴 힘들었다.

영화 막바지에 삽입된 병사들의 대사. “우리가 이런 개고생 하면서 나라 지킨 걸 후손들은 알려나 몰라”란 대사에선, 동시대 관객들에게 뭔가 메시지를 전하고싶어하는 감독의 ‘무리수’까지 엿보일 정도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명량’에 열광할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다. 사람들은 왜 뻔하고 허술한 스토리에도 열광하는 걸까? 그리고 나도, 뻔한 장면임에도 극장에서 볼 때는 왜 잠시나마 가슴이 뭉클했을까? 여기에 이순신이란 뻔한 소재를, 정말로 뻔하게 만든 김현민 감독의 속내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이 영화는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결핍되어 있는 ‘그 무언가’를 그려주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애쓰고, 자기 한 몸 바쳐 지키려는 사람이 사라진 시대. 버림 받는 자식 같은 신세가 된 수 많은 사람들은 논리적이고 그럴듯한 얘기보다는, 뻔할 지언정 모범적인 얘기에 더 가슴을 쉽게 여는 것 아닐까?

이 영화의 이순신은 정신은 전투 의지로 가득차 있지만, 육체는 이미 쇠약할 대로 쇠약한 상태다. 고문 후유증이었을 게다. 이렇게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한 장수가 자기가 책임진 병사와 백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잃어버린 뭔가’를 채워넣은 것 아닐까? 세월호처럼 가라앉은 대한민국 국민의 감성코드를 잘 건드린 작품이 아니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설명에선 자칫 국가주의, 전체주의적 착각의 우려도 적지 않다는 점 인정한다. 아마도 좀 더 분석적이고 냉철한 평자라면 그런 진단을 내놓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 없는 자식들은, 부모에게 뻔한 사랑을 받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나게 마련이다. 실연당한 젊은이는, 청춘남녀들의 뻔한 연애질에도 부러움을 느낀다. 그게 뻔한 영화 ‘명량’의 경쟁/소구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2014년 대한민국 국민들이 갖고 있는 그런 상실감을 이 영화가 잘 채워준 것 아닐까? 그래서 난 이 영화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 현실이 불편하다.

이 영화의 네티즌 평점과 전문가 평점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고 한다. 네티즌들은 높은 점수를 주는 데, 전문가들의 평은 다소 인색하다고 한다. 그게 딱 이 영화의 좌표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 영화는 논리보다는 감정, 그것도 억눌린 감정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를 ‘나쁘진 않았다’고 평가하는 나 역시 전문가보다는 일반 관객 쪽에 훨씬 더 가까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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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트리는 7월 31, 2014에 님이 Culture에 게시하였으며 , , , 태그가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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