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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좌) 신문과 페이스북, 누가 더 폭력적인가


제목이 좀 과격해 보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저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다. 다시 한번 물어보자. “극우신문과 페이스북. 누가 더 폭력적일까?” 폭력적이란 말이 조금 거슬릴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극우신문과 페이스북. 어느 쪽이 더 독자(혹은 이용자)를 지배하려고 할까?”

질문에 답하기 전에 다른 얘기부터 먼저 해보자. 요즘 알고리즘이란 말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특히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시대라는 화두가 확산되면서 알고리즘은 이젠 친숙한 일상 용어가 됐다. 최근엔 미국 퍼거슨 사태와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계기로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알고리즘 비교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은 내가 쓴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듯 다른 소셜 플랫폼 이란 글을 참고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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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시대부터 우리를 지배해왔던 알고리즘

우리는 알고리즘이란 말을 자주 쓴다. 검색 알고리즘, 소셜 플랫폼의 알고리즘 같은 말들은, IT 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일상 용어나 다름 없다. 그런데 대체 알고리즘이 뭘까? 궁금하세요? 궁금하면 500원, 이라고 했다간 돌이 날아올테니, 일단 용어사전부터 한번 뒤져보자. 구글에서 ‘알고리즘’을 검색했더니 오른쪽에 텀즈코리아 제공 용어가 등장한다.

알고리즘이라는 용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나 방법을 말하는데, 이 단어는 아랍의 수학자인 Al-Khowarizmi 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정교한 알고리즘들의 집합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수학이나 컴퓨터 과학에서 말하는 알고리즘은, 보통 반복되는 문제를 풀기 위한 작은 프로시저를 의미한다.

무슨 말인지 알듯, 모를 듯 할 것이다. 그냥 어떤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기본 원리 정도로 정리해두자. 당연한 얘기지만, 알고리즘이란 말은 컴퓨터 용어다. 그런데 곰곰 따져보면 알고리즘은 컴퓨터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지금부터 서서히 내 속셈을 드러내보자. 신문이나 방송, 잡지 같은 것들도 사실은 바탕을 따지고 들어가면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있다. 무슨 얘기냐고? 광화문에서 세월호 반대 시위가 열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진보성향의 A신문과 보수성향 B신문 기자가 취재를 하러 왔다고 가정해보자. 같은 사안이지만 두 신문 기자는 전혀 다른(까지는 아닐 지라도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

물론 신문에 나온 기사도 굉장히 다를 가능성이 많다. A신문은 시위자들의 주장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B신문은 시위자들의 과격성과 시민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을 좀 더 강조할 가능성이 많다. 이런 관행을 우리는 신문의 논조 혹은 편집방침이라 부른다.

그런데 한번 따져보라. 아날로그 시대 용어로는 ‘논조’나 ‘편집 방침’이지만, 그걸 컴퓨터 시대 용어로 바꾸면 알고리즘이 된다. 기자들은 자신들이 배운, 혹은 조직이 요구하는 알고리즘에 따라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게 된다.

‘The Daily Me’의 축복 뒤에 있는 또다른 폭력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1990년대에 출간한 [디지털이다]에서 ‘나만을 위한 신문(The Daily Me’)’이란 개념을 제안했다. 미래엔 대중의 관심보다 나의 관심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소비를 하게 될 것이란 얘기였다. 처음 제기될 때만 해도 꿈 같은 소리였지만, 21세기로 접어든 요즘은 상식이나 다름 없는 얘기가 됐다. 플립보드나 자이트 같은 태블릿 앱들은 이미 네그로폰테의 고색창연한 주장을 현실의 영역으로 내려놨다.

우리가 소비하는 ‘나만을 위한 신문’은 이 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소셜 플랫폼 역시 ‘나만을 위한 신문’을 제공해준다. 13억에 이르는 전 세계 가입자들은 페이스북을 열 때마다 각자 자신의 관심사와 취향에 최적화된 뉴스피드를 접하게 된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에 따라 제공되는 소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과 전통 언론의 편집방침. 어딘지 닮은 데가 많지 않은가? 내겐 전통언론의 편집방침과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다.

물론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독자들은 전통 언론의 알고리즘에 대해선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다. 100%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 지 짐작 가능하다. 그래서 A신문과 B신문 기사를 읽을 땐 ‘과거 독서 경험을 통해’ 체득한 알고리즘을 감안해서 이해한다. 비판적 읽기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어떤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그냥 내가 좋아요나 댓글을 많이 단 상대방의 글이 우선적으로 뜰 것이란 정도만 짐작할 뿐이다. 또 상호작용 지수가 높은 콘텐츠 위주로 보여줄 것이란 추론 정도를 하고 있다.

일상 콘텐츠만 소비할 경우엔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이미 공적인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 강화될 가능성이 많다. 페이스북 담벼락이 ‘뉴스피드(Newsfeed)’로 불린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페이스북이 뉴스 소비의 주된 플랫폼 역할을 할 경우 독자(혹은 이용자)들은 전통 언론에서 견지했던 비판적인 입장을 버리고 무장해제당할 가능성이 많다. (고 하면 지나친 얘기일까)

애틀랜틱의 알고리즘 아웃소싱 제안

토요일 아침부터 골치 아픈 생각을 하게 된 건 우연히 접한 애틀랜틱의 기사 때문이다. The Next Generations of Facebook’s News Feed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내용은 간단하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으니, 아예 이걸 아웃소싱하는 방안은 어떠냐는 애기다.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애틀랜틱 기사에서 그 부분을 그대로 가져와 보자.

The idea is to combine the relative transparency of human-made editorial decisions with the precision of algorithmic ones. Imagine, Diakopoulos says, if anyone could write her own News Feed algorithm—and if those who didn’t want to write their own could subscribe to the ones others created. This sort of architecture would enable people to choose at least some of the sensibilities driving what they see on social platforms, rather than being totally at the mercy of an algorithm that Facebook engineers tweak for all kinds of reasons

개인들이 뉴스피드 알고리즘을 만들도록 한 뒤 원하는 사람들은 그 알고리즘에 가입하도록 하면 어떠냐는 제안이다. 물론 이 때는 알고리즘의 기본 작동 원리를 정확하게 밝혀줘야 한다. 이를테면 “내 알고리즘은 당신 친구들 중 가까운 순서부터 표출해준다” 거나 “당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보인 사람부터 표출해준다”거나 “멀티미디어 콘텐츠부터 먼저 표출해준다” 등의 ‘알고리즘 표출 원칙’을 공개해야 할 것이다.

애틀랜틱은 왜 이런 제안을 했을까? 페이스북이 알고리즘을 한번 바꿀 때마다 엄청난 파장이 뒤따른다. 특히 미디어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기도 하고, 느닷 없는 횡재를 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이용자들이다. 앞에서 계속 지적했던 것처럼 “의식하지 못한 채”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뜨는 게 세상의 전부(혹은 자기 주변의 전부)라고 믿을 가능성이 많다. 조선일보나 한겨레신문을 읽을 때 과거 경험을 토대로 알고리즘 작동 방식을 의식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폐해가 뒤따를 우려가 있다.

과연 페이스북은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까? 당연히 안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애틀랜틱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사실 페이스북이 관심을 갖는 건 ‘뉴스피드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수익에 도움이 되는 광고를 제대로 보여주는 게 최대 관심사다. 실제로 최근 1, 2년 사이에 뉴스피드 알고리즘을 바꾼 뒤 페이스북의 수익이 크게 늘어난 점을 감안해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서드파티 알고리즘은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광고를 수용하도록 하면 굳이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란 흥미로운 제안이다.

어쨌든 애틀랜틱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서드파티 알고리즘 제안보다는 “편집 기준도 알지 못하는, 그래서 진보인지 보수인지도 모르는 매체가 보여주는 콘텐츠를 무방비 상태로 소비해야 하는”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갑자기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렝 드 보통이 [뉴스의 시대]에서 지적한 ‘주체적인 미디어 소비’가 소셜 플랫폼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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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좌) 신문과 페이스북, 누가 더 폭력적인가”에 대한 2개의 댓글

  1. 핑백: 알고리즘에 휘둘리는 시대 | 비스킷 공장

  2. Byunghun
    8월 31, 2014

    ‘알고리즘’을 만드는 기술자들의 힘이 나날히 강해지고있군요. 정말….무능하기까지 느껴지는 미디어의 소비자들인 우린 어떻게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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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트리는 8월 23, 2014에 님이 Media, Tech에 게시하였으며 , , 태그가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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