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per/Text

테크와 미디어, 그리고 컬처 관련 고품격 콘텐츠

디지털 퍼스트, 혹은 생살 파내는 고통?


2009년 4월 2일 오전 11시(미국 동부 시간 기준).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세계 최대 경제기구인 G-20 합의사항을 공식 발표했다. G-20 회원국들이 1조 달러 가량의 자금을 쾌척했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CNN을 비롯한 전 세계 많은 매체들은 일제히 고든 총리 발표 장면을 생중계했다. 가디언을 비롯한 일부 매체는 블로그 생중계를 했다. 수 많은 뉴스 사이트들이 고든 총리 발표 전문을 링크해주고, 또 다양한 기사들을 쉴새 없이 쏟아냈다. 보도 경쟁에 참여한 매체 중엔 인탱글드 얼라이언스(Entangled Alliances)란 블로그도 있었다. 영국 좌파 청년 4명이 운영하는 사이트. 하지만 이 사이트 역시 G-20 관련 소식을 꼼꼼하게 전해줬다.

그로부터 16시간 가량 지난 다음 날 아침. 미국 가정에 배달된 뉴욕타임스 1면엔 어제 하루 종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래서 대다수 독자들이 이미 주요 내용을 모두 알고 있는 바로 그 뉴스가 톱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뉴욕타임스 기사는 전날 쏟아진 수 많은 기사들에 비해선 다소 깊이가 있고, 또 조금 더 다양한 관점을 담아내긴 했다. 최고 뉴스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은 충분히 가질만한 수준. 하지만 하루 다음날 신문을 접하는 독자들이 또 다시 그 뉴스를 꼼꼼하게 읽도록 해야 할만큼 가치가 있을까?

미첼 스티븐스의 [비욘드 뉴스]에 나오는 내용이다. 오랜 기간 뉴스의 역사를 탐구해온 저자는, 뉴욕타임스의 저널리즘적 역량에 대해선 추호도 의심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전제 하에 그가 던지는 또 다른 질문은 다소 충격적이다. 역시 그 책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고 품질 기사를 제공한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G-20회담 같은 초대형 국제뉴스 커버할 땐 서 너 명의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사이트가 재빨리 제공한 기사도 충분히 쓸만했다. 기껏 좀 더 정확하고, 철저한 기사라는게 특종을 터뜨리지 않을 때 뉴욕타임스가 제공하는 차별성의 전부인가?

사진 (23)

특종을 하지 않을 때 뉴욕타임스가 제공하는 차별성이란 게 고작 ‘좀 더 정확하고’ ‘조금 더 철저한 정도’가 전부라면, 과연 인터넷에서 이미 다 소비되고 난 뉴스를 다음날 또 다시 소비할 유인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다. ‘천하제일’ 뉴욕타임스 종이신문 편집자들은 왜 하루 지난 뉴스를 또 다시 1면 톱으로 올린 것일까?

또 다시 [비욘드 뉴스]의 한 구절을 그대로 인용해보자. 뉴스의 소비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시대를 맞아, 한 때 ‘언론의 정전(canon)’ 역할을 했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종이신문의 효용 가치를 묻는 돌직구 질문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기다릴 가치가 있지 않은가? 좀 더 뛰어난 기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장점을 앞세워 좀 더 광범위하고 효과적인 뉴스를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어제 어떤 중요한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던가? 그랬다. 문제는 중요한 정보원으로부터 가져온 약간의 부가적인 인용 문구, 약간의 관점, 그리고 분별있고, 믿을만하며, 차별화된 분위기만으로 이미 잘 알고 있는 주제에 관한 뉴스를 볼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냐는 점이다.

이런 질문은 [뉴욕타임스에서 뉴스 만들기(Making News at the New York Times)]에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과연 저들은 왜 밤이 되면 뉴스를 되돌리는걸까?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걸까?” 란 질문이다.

디지털 퍼스트 시대 종이신문은?

저널리즘이란 관점에서 요즘 시대를 역사에 비유하면 어디가 적당할까? 물론 논자마다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난 수 백 년을 이어져 내려오던 신분세습제도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던 조선 후기, 혹은 구한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속 배경 같던 시기. 갑작스럽게 몰려드는 신문물의 거센 파도 앞에서 천석꾼 전통 부자들조차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을 수 없는 시기. 그러다가 어느날 아침 느닷없이 훅~하고 몰락해버릴 수도 있는 격변의 시기.

[비욘드 뉴스]가 던지는 돌직구도 바로 그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전통 패러다임에선 천하제일이란 자부심. 그리고 실제로 전통 패러다임에선 천하제일을 자랑하는 품질. 그런데 그 자부심과 품질이 독자들에게도 ‘명품’이라며 찾아올만한 유인이 되는 걸까?

스티븐스는 이젠 세상이 바뀌었다고, 예전처럼 갓쓰고 도포 입은 채 천자문만 외워선 안 되는 시대가 됐다고 계속 외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지혜의 저널리즘(wisdom journalism)’이란 얘기는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변화의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있는 전통 신문들이 처한 상황이 딱 그럴 것 같다. (그렇다고 온라인 상에서만 존재하는 매체들의 고민이 덜할 것이란 의미는 절대로 아님. 상당수 온라인 전용 언론사들은 혁신이란 거창한 화두보다는 생존이란 좀 더 절박한 과제를 부여잡고 있으니.)

늘 그렇지만 변화는 힘들고 어렵다. 내 손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는 여전히 치즈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예전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몇 년 먹고 살기엔 크게 무리 없어 보이는 치즈. 과감하게 덤벼들려니 저 치즈마저 잃을 것 같은 두려움.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누가 과감하게 결단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과감한 변신이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온라인 매체도 마찬가지일게다. 어쩔 수 없이, 어쩌면 아는 게 그것 밖에 없으니, 전통 방식을 따르고 있고, 또 그 방식대로 하면 그럭 저럭 먹고 살 수익은 나오니, 선뜻 과감한 변신을 꾀하긴 쉽지 않은 상황. 늘 그렇지만 문제 거리는 많은 데, 딱 부러진 해답은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설마 설마”하던 신분제는 생각보다 빨리 붕괴됐다는 사실이다. 그건 역사가 말해주는 진실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저널리즘의 비즈니스 모델도 먼 훗날엔 그렇게 평가할 지도 모를 일이다.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정보

이 엔트리는 8월 25, 2014에 님이 Media에 게시하였으며 , , 태그가 지정되었습니다.

내비게이션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