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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비선형적인 우리들의 책 읽기


글쓰기/읽기의 선형성과 관련해 빠지기 쉬운 오해 중 하나는 ‘텍스트=선형성’ ‘하이퍼텍스트=비선형성’이란 이분법적인 등식이다. 링크를 활용해 쉽게 건너뛸 수 있는 하이퍼텍스트가 비선형적인 독서를 좀 더 수월하게 해 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종이책을 ‘정말로’ 선형적으로 읽는지는 좀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이와 관련해서는 김용석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김용석은 “책의 선형성은 책의 절대적인 속성은 아니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참고로 로마 그레고리안대학 철학과 교수를 역임한 김용석은 현재는 영산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책이 선형적  읽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적용되지는 않는다. 아니,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어떤 책은 뒤에서 읽을 수도 있고, 중간에서 읽거나, 아니면 어느 부분만 읽고 마는 경우도 있다. 흔히 독서의 선형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줄거리가 있는 구조를 기본으로 하는 소설 같은 책을 선입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깊이와 넓이4막 16장] 136쪽.

사진 (33)

킨들과 종이책, 어떤 것이 더 선형적일까

과연 우리가 종이책을 선형적으로 읽고 있는가? 물론 소설이나 단숨에 읽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소품들은 선형적으로 죽 읽어나갈 것이다. 그런데 그 선형적 독서를 추동하는 것이 종이란 매체일까? 난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종이에 담긴 콘텐츠가 선형적인 독서를 이끄는 힘이다.

김용석의 주장처럼, 우리는 의외로 종이책을 읽을 때 선형적인 독서를 하진 않는다. 한번 따져보자. 학교 다닐 때 대학 교재를 읽은 경험을 떠올려보자. 교재 처음부터 끝까지 선형적으로 읽은 적 있는가?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지금쯤 교수나 학자를 하고 있어야 한다. ^^대부분은 발췌독 내지는 비선형적인 독서를 했을 것이다. 목차나 색인에서 페이지를 찾은 뒤 읽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모습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우리가 하이퍼텍스트에서 흔히 접하는 링크와 비슷한 기능이다.

킨들과 종이책을 둘 다 활용해 본 내 경험으로 보면 오히려 킨들을 읽을 때 더 선형적인 독서를 했다. 왜 그랬을까? 역시 내 경험상 킨들보다 종이책의 인터페이스가 훨씬 더 유연했기 때문이다. 종이책에선 이리 저리 뒤적이는 게 큰 부담이 없었지만, 킨들은 아직도 여기 저기 넘어다니는 게 부담스럽다.

그래서 난 킨들로 글을 읽을 때 훨씬 더 집중해서 읽게 된다. ‘게으른 선비 책장 넘기는’ 쓸 데 없는 행위를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킨들로 읽는 책은 전부 영어로 돼 있어서 그나마 집중이라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를 하기 힘들다는 부분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고백은 꼭 해야할 것 같긴 하다.

과연 페이퍼 브레인과 스크린 브레인이 다른 걸까

아침에 이 글을 쓰게 된 건 한 페친께서 링크해 준 글 때문이다. 페이퍼 브레인과 킨들 브레인은 다르다는 글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스크린에서 읽을 때와 종이를 읽을 때 두뇌의 다른 부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크린 읽기를 많이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비선형적 읽기’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는 주장이다.

스크린샷 2014-09-22 오전 10.58.09

일단 이런 전제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저 주장을 하는 필자는 담기는 콘텐츠는 고려하지 않은 채 다소 편의적으로 분류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흥미진진한 소설을 컴퓨터 스크린으로 읽는다고 생각해보라. 이를테면 ‘해리포터’ 같은 소설이나, 사춘기 소년이라면 ‘제법 야한 로맨스 소설’ 같은 것들. 이 쪽 저 쪽으로 시선을 돌릴 것 같은가? 난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몰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긴 글을 잘 읽지 못하게 되는 걸까? 그건 스크린과 종이란 매체의 차이가 아니라, 그 곳에 담긴 콘텐츠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우리가 스마트폰에선 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짧은 글 읽기만 계속 해 왔기 때문에 그 정도 의미단위에 익숙해져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난 링크한 저 글의 제목 부분이 함의하는 내용보다는 뒷부분에서Maryanne Wolf란 전문가가 지적하는 내용에 더 공감한다. 문제는 종이나 스크린이란 매체의 차이가 아니라, 외부 자극 요인이란 것이다. 주변에 눈돌릴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몰입해서 읽지를 못한다는 지적이다.

하이퍼텍스트도 콘텐츠란 관점에서 접근해야 

난 우리가 너무도 쉽게 ‘텍스트=선형성, 하이퍼텍스트=비선형성’이란 결론을 내리는 건 조금 위험할 수도 있다는 얘길 하고팠다. 하이퍼텍스트가 굉장히 비선형적이고 자유로운 읽기를 장려할 것이란 진단 역시 어쩌면 과학적인 근거가 미약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하고 팠다.

이건 저널리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흔히 이론적으로는 인터넷 저널리즘 독자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할 것이란 전제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그냥 읽는 순서까지 정해주는 걸 더 선호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하이퍼텍스트는, 경우에 따라선 종이책보다 더 저자들의 권력이 강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때론 연결 순서를 정해주기 때문이다.

자,  이제 글을 맺자. 난 페이퍼 브레인과 스크린 브레인이 다르다는 주장엔 선뜻 동의하지 못하겠다. 결과적으로 그랬다면, 그건 페이퍼와 스크린이란 매체에 담긴 콘텐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어정쩡한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선형적 독서와 비선형적 독서를 추동하는 가장 큰 요인은 ‘읽기 플랫폼’ 보다는 ‘그 안에 담긴 콘텐츠’라고. 살짝 야하면서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은 어떤 매체에 담아놔도, 하다 못해 자그마한 스마트폰 화면으로 읽으라고 해도, 절대 동요하지 않고(!!!!), 끝까지, 꿋꿋하게, 선형적으로, 읽어나갈 것이라고 장담한다. 적어도 나는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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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비선형적인 우리들의 책 읽기”에 대한 1개의 댓글

  1. JSK
    2월 28, 2016

    공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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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트리는 9월 22, 2014에 님이 Culture에 게시하였으며 , , , 태그가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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