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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과 한국 온라인 저널리즘


미루고 미뤘던 영화 ‘비긴 어게인’을 봤다. 내가 참 좋아하는 키이라 나이틀리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관심을 끌었던 영화. 게다가 보고 나온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칭찬을 하니 도저히 외면할 명분이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잔잔했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 처럼 깔끔한 영화. 그렇지만 잔잔한 여운이 남았다. (이 말은 긍정, 부정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잔잔하다는 건, 뒤집어 얘기하면, 뭔가 살짝 아쉽다는 의미도 된다.)

물론 내가 영화평을 하려고 ‘비긴 어게인’ 얘기를 풀어놓으려는 건 아니다. ‘비긴 어게인’을 보면서 문득 척박했던 이 땅의 온라인 저널리즘이 떠올랐다. 그 얘길 하려는 거다.

(L-R) KEIRA KNIGHTLEY and MARK RUFFALO star in BEGIN AGAIN

어설펐지만 흥겨웠던 첫 발걸음 

이 영화는 벼락 스타가 된 남자 친구에서 배신 당한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와 스타 프로듀서였다가 지금은 모든 걸 잃은 댄(마크 러팔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실패자들의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는 영화에 가깝다.

하지만 이 영화의 모티브는 ‘흥’이다. 우연히 술집에서 그레타의 앙상한 연주를 듣던 댄은 몇 년 동안 죽어 있던 예술혼이 새롭게 움트는 것을 느낀다. 그는 기타 반주에 의존한 그레타의 노래에 피아노를 비롯해 베이스, 바이올린, 드럼을 곁들인다. 물론 상상 속에서. 남들 눈에는 어설프기 그지 없었지만, 흥에 겨운 댄에겐 또 다른 희망이 싹트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온라인 저널리즘 현장에 뛰어든 우리도 그래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 때만 해도) 실체도 없는 인터넷신문 창업멤버로 동참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뜨악한 반응을 보였다. 나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대부분의 멤버들이 그랬던 것 같다. 벤처 붐 하나만 믿고 뛰어들기엔 너무도 척박하고도 힘들었다.

하지만 흥에 겨웠던 우리들의 눈에는 좀 다른 게 보였다. 떼돈을 벌 것이란 허황된 기대를 갖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보다는 “눈치 안 보는 언론, 새로운 혁신을 선도하는 언론”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마력에 완전히 매료됐다.

지금 돌이켜봐도 2000년대 초반 2년 가량이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ROI를 따지면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오지만, 열정에 눈이 먼 내겐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험난하기만 했던 우리들의 앞 길

자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보자. 흥에 겨워 시작하긴 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댄은 그레타가 진흙 속에 묻혀 있는 진주라면서 예전 동료에게 데리고 간다. 하지만 그들에겐 거대 음반회사들을 찾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오는 데모 테이프조차 없다. 하기야 그레타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친구 따라다니며 작곡이나 하던 처지니 자기 노래 녹음해 놓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영화는 그레타와 댄이 이런 난관 속에서도 갖가지 것들을 활용해 멋진 음악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들은 변변한 제작 시설이 없어 거리 녹음을 감행한다.

열정으로 출발했던 한국 인터넷 저널리즘의 앞길도 척박하긴 마찬가지였다. 준비 작업을 끝내고 막 출범할 무렵 미국 나스닥 증시 대폭락이 닥친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그 뒤 닷컴 대몰락이 이어지면서 한국의 인터넷 비즈니스도 험난한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레타와 댄이 제작 시설과 자본 부족으로 고전했다면, 우리는 그 둘에다 경험 부족이란 또 다른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을 만드는 덴 성공했지만, 정작 그 뒤 스스로 굳건하게 일어서는 방법은 제대로 몰랐다고나 할까?

스크린샷 2014-10-01 오후 3.14.11

독립 레이블로 성공한 댄과 그레타, 그럼 우리는?

영화 ‘비긴 어게인’ 속 주인공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문법을 받아들였다. 댄은 아예 뉴욕의 소음 속으로 뛰어들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녹음실이 없는 약점을 또 다른 강점으로 바꿔버린 것. 그들은 뉴욕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도시와 하나로 융합되는 경지에까지 다다른다.

흥에 겨운 이들의 시도에 주변 사람들도 조금씩 마음을 연다. 조용히 하는 대가로 돈을 달라고 하는 아이들도 어느 새 합창 속에 동참한다. 어정쩡하게 동참했던 음대생도, 뉴욕 할렘가 주민들도, 심지어 한 동안 댄과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조차 흥에 겨워 함께 어우러졌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 만든 음악은 최고 걸작으로 거듭났다. 처음 그레타를 외면했던 음반사에서 오히려 함께 제작하자고 안달할 정도. 하지만 그레타는 전통적인 유통 방법 대신 아이튠스를 선택한다. 독립 레이블다운 선택. 그 선택을 보는 순간 내 머릿 속에선 주마등처럼 지난 10년이 스쳐 지나갔다.

따져보면 한국 인터넷 저널리즘이 처한 환경도 댄과 그레타 못지 않았다. 하지만 우린 늘 전통 문법을 고수했다. 아니, 전통 문법을 버리는 게 두려웠다. 대형 음반 제작사와 비슷한 방법. 그 방법만이 최선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어쨌든 영화는 ‘짧은 감동과 긴 여운’을 남긴 채 막이 내린다. 하지만 현실 속에 몸 담고 있는 내겐 아직 엔딩 크레딧이 보이지 않는다. 당연한 말씀. 돌이켜보면 댄이나 그레타처럼 현실 속의 문법을 과감하게 던져 버리는 용기도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게 영화와 현실의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법. 그 교훈이 던져준 프리즘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노라니, 만만찮은 회한이 내 머리를 때린다. 그 울림이 생각보다 크다는 데서 작은 위안과 희망을 찾아야 하는 걸까? 그리고 이 영화 제목처럼 ‘비긴 어게인’을 선언하면서 과감한 변신을 꾀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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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과 한국 온라인 저널리즘”에 대한 2개의 댓글

  1. Minju Song
    10월 1, 2014

    영화에서 유투브가 아니라 iTunes를 통해서 전통적 음반보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판매를 한 것 같은데요.

    글에 말씀하신 맥락에는 지장없는데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글 남깁니다. ^^
    RSS로 늘 좋은 글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hypertext30
      10월 1, 2014

      아. 제가 착각했습니다. 확인해보니 아이튠스가 맞네요.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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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트리는 10월 1, 2014에 님이 Culture, Media에 게시하였으며 , , 태그가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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